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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 홈콕 혼자 있을 때 나의 마음과 경건생활

 코로나로 집콕,홈콕이라는 단어가 이제 익숙해졌다. 이전에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한참이나 생각하게 되었었다.

코로나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던 모습이 이제는 개인이 온라인으로 혼자 예배드리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내안에 교회는 이전부터 이러한 시스템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에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기가 쉽다.

자기의 업무공간에서 혼자 있을 때, 또는 집콕이나 홈콕으로 혼자 있을 때 과연 어떠한 마음이 들까?





1.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형제들이 많았기에 조용하기보다는 떠들면서 살았다. 나의 공부방이 있기는 하지만 신발을 신고 10미터는 걸어가야 하고, 방도 뜨끈하지 않았고, 지네가 가끔 나왔고, 적막함이 감돌아서, 거기에 앉아있다가 바로 나오곤 하였다. 그 혼자 있을 때의 적막함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웠다.

2. 청년 시절에는 단체로 사는 삶이 대부분이었다. 선교 단체에 있다가 보니 같이 쓰는 숙소에서 생활하였다. 마음 한구석에는 내방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나, 몇 년 동안 이러한 삶이 계속되었다. 같이 있었기에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 적막함, 답답함은 없었다. 간혹가다가 혼자 있을 때는 외식하는 느낌이었으나 그 환경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3. 결혼생활 이후에는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소수의 사람들과 같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조용하니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허전하고 외로움이 밀려왔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적응이 필요한데, 그 답답함과 외로움을 견디어 내야 하건만, 견디어내기가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4. 혼자 있는 시간에, 일단 누구도 보이지 않고 나만 있기에 내가 평상시에 해보고 싶은 일을 한다. 나의 전문적인 분야보다는 외로움과 허전함이 밀려오기에, 그 부분을 해소하기가 먼저이다. 컴퓨터를 켠다든지, 폰을 본다든지, 앨범을 본다든지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느낌으로 보낸다. 혼자 있을 때 개인 예배는 익숙하지 않았고, 정시 기도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 마음속의 외로움이 폭풍처럼 밀려오기에 수습하는데 바빴다.

5. 나이가 들어가니 이전의 삶에서 해보지 않았던, 억눌려왔던 일을 해보게 된다. 꽉 막힌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유로운 여행을 하기 원한다. 내 주변의 동료들을 볼 때 이러한 부류가 많다. 오랫동안 연애를 안해보았던 사람들은 바람을 핀다고 한다.이밖에 수많은 부류가 있다. 나열하기가 거북하다.

나는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부분이 나만의 전문분야이다. 나 자신의 일이나 나 자신은 희미하고 타인, 타인의 일을 지원하는 삶으로 살아왔다. 이 모습을 고치기 참으로 어려웠다. 무언가 나의 일을 하려고 하면 힘이 빠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죄책감이 밀려오고, 성과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이러한 모습이었다. 내가 나를 볼 때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서서히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이제는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기에 나의 전문적인 일, 후대에게 남겨주어야 할 신앙적인 유산을 위해 집중하게 된다. 마음속에 가득 있는 부분이다.

6.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가 보니 컴퓨터나 폰에서 많은 광고가 온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온다. 메일도 온다. 그리고 컴의 다른 창에 무언가 뜬다. 대부분 주식, 야동 사이트, 코인, 재택근무로 돈 번다는 내용이다. 혼자 있으니 혼자 정보를 보고서 판단하는 일이니,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 혼자 있을 때 온라인상에서 왕이나 대통령도 될 수 있고, 형사나 조폭도 될 수 있다. 나는 저 정보에 왜 내가 노예같이 낚이냐는 입장이다.오히려 내가 낚아야 하는 입장이다.

7. 나에게 찾아온 갑자기 혼자 있는 시간, 익숙하지 않지만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 중년이 넘어가는데 이제서야 이 혼자 있는 시간에 점점 익숙해진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내 공간 한쪽 벽면에는 내가 계속 기도해야 할 분들, 나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을 수십 장을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가족, 부모, 친척, 친구, 내안에 교회 성도들, 단체들, 이하 관련된 사람들의 사진이다. 잠시 보면서 기도한다.

정면 벽면에는 마인드맵으로 내가 가는 방향들을 그려놓았다. 나의 목회생활, 사회생활, 개인생활. 마치 첩보영화를 보면 벽면에 가득히 그림과 글을 연결하여 놓듯이, 나도 이러한 패턴을 아주 좋아한다. 커피타임을 가지면서 내가 가는 방향을 다시금 점검한다.

8. 혼자 있을 때 오전, 오후, 저녁시간에 내가 가는 방향에 맞게 갈 힘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나는 하루에 3번 정시 기도한다. 하루에 한 번은 개인 예배를 드린다. 내 마음속에 지속할, 밀고 나갈 힘이 필요하기에, 기도하고 예배드린다. 물론 헌금도 한다. 이전의 나의 삶과 비교 시, 내가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보다도 더 비판적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더 불신앙적으로(마음속으로) 살아온 나이다. 내가 나를 안다. 내 마음은 전형적인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개신교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그러면서 왜 목회자가 되었는지 참 PASS 한다. 그 믿음이라는 부분이 예배, 경건생활, 기도, 찬송, 헌금, 예배당...

그런데 이제는 좀 다른 방식으로 살기로 했다. 이전의 방식으로 인한 결과가 긍정적인 부분이 많지 않기에 나머지 인생은 세상에서 그렇게 욕을 얻어먹는, 동네북처럼 매스컴에 부정적으로만 나오는, 무언가 시선을 돌리기 위해 획책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그 포지션으로 이제 개신교인이 되어보려고 한다.

9. 나 혼자 있을 때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 인정한다. 나는 그리스도교인이다. 내 육체적인 눈으로는 나 혼자 있다. 그러나 육체적인 눈과 더불어 영적인 눈으로 본다면 주 하나님이 계시고, 그리스이신 주 예수님이 서 계시고, 주 성령님은 내 안에, 나의 환경 가운데 주관하시고, 천사들은 내 주변을 보호하고 있다. 물론 방해자와 방해 매개도 있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론적으로는, 문서적으로는, 상식적으로는 다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어느 정도 믿느냐, 어느 정도 활용하느냐는 개인의 믿음의 수준에 따라서 다르다. 환상도 아니고 자기최면도 아니다. 신념도 아니다. 겨울에 눈이 오고, 나무가 꽃피고, 오늘 태양이 뜨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으면서도 이 부분을 믿지도 않았을뿐더러 활용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 땅에서 이미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10. 오늘도 남은 인생, 이전과는 다른 position으로 살아본다. 답답하면 다시 눈을 감고 기도한다. 외로우면 다시 기도한다. 심심하면 다시 기도한다.

11.이글을 다쓰고 다시 읽어보니 나자신을 너무 비관적으로 쓴것같다. 또한 완전 꼴통 비기독교인같은 삶이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릴떄부터 잘 믿으려고,누구보다도 더 잘 믿으려고 애쓴사람이다. 다만 방법이나 방향이 평탄한 길이 아닌 다른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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