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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교회 주일예배 2026. 6월 7일 주일말씀

6월 7일 주일말씀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과 성령강림까지 경험한 사람의 비교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 후 둘째 주일입니다. 내안에교회는 성령강림절을 한 번 절기로 지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금년에는 이 주제를 계속 붙들고 가려고 합니다. 교회력을 보면 성령강림 이후가 27주, 28주까지 이어지는데, 오늘은 그 흐름 안의 둘째 주일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성령강림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거이고, 성령이 오셔야만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신 예수님을 우리가 스물네 시간 마음껏 모실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은 동떨어진 분이 아니라, 언제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시는 분입니다.

오늘은 같은 맥락에서, 성령강림을 경험한 사람과 일반 사람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다섯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전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번 주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였는가

이번 주 저는 일주일 내내 병원에 있었습니다. 잠을 잘 때도 보호자 간병 의자가 너무 좁아 다리를 제대로 뻗지 못했습니다. 결국 다이소에 가서 긴 쿠션을 사 와 머리를 베고 자니 그나마 조금 편했습니다.

병실에서 하루 종일 들리는 이야기는 온통 아픈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환자가 사모님 한 분이었는데, 자꾸 늘어나 어제는 병실이 다 찼습니다. 자리가 좁아지고, 옆에서 왜 교통사고를 냈느냐며 서로 언성을 높이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음식도 간이 거의 안 되어 있어 삼키기 힘든 것들이었고, 사모님은 계속 토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2주째 있다 보니 오히려 적응이 되어 편안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밥만 챙기고 옆에서 잘 버티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제 저녁 드디어 퇴원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걷는데, 그 자유로움과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깥이든 안이든, 스물네 시간 마음속에 밀려오는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어떻게 지키느냐, 그것이 진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렀습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적극적으로 다른 생각을 해 보려 해도 그것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러나 안에서 계속 솟아나는 부정적인 생각은 스물네 시간 삼백육십오일 끊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이름은 오직 하나, 예수는 그리스도뿐입니다.

과거 이야기의 위험

한편 저 자신에게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가만히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이 나이가 들수록 자꾸 과거로 흐릅니다. 너 20대 때 어땠지, 30대 때 어땠지. 문병 오신 목사님과 사모님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로 과거 이야기만 나왔습니다.

저는 과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는 다 과거의 것뿐이라 자꾸 그리로 흘러갑니다. 더 무서운 것은, 과거 이야기를 하면 짜증과 분노, 정죄와 비판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안에 믿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달라진 모습이 있었습니다. 말을 한마디 뱉고 나서, 아 또 과거를 비판하고 있네, 하며 다시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러 마음을 지켰습니다. 한 1분 정도 열심히 말하다가도, 어 내가 또 속았네, 하고 스스로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다시 그 이름을 부르는 제 모습을 봅니다.

그 결과 마음에 변화가 왔습니다. 예전에는 밥을 먹어도 체한 듯 답답했는데, 지금은 언제든지 속이 후련하고 마음이 깔끔한 상태를 봅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밑바탕이 불안하고 우울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도 한 번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언제든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러 싸워서 몰아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체념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저는 설교하는 일이 정말 좋습니다. 예전에는 설교 준비하며 속에서 짜증이 올라올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목사 된 것이 좋고, 이렇게 잘 들어 주시는 여러분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이번 주 성경 전체를 볼 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저를 포함해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에 다 붙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이고, 하나님의 영이 안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은 먹고 자고 결혼하고 물건 사고파는 일뿐이고, 그 종착점은 언제나 죽음입니다.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제 소식을 들었는데, 사모님의 동창 되시는 경찰관 한 분이 사고를 수습하다가 갑자기 순직하셨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장례식이었습니다. 경찰이 되는 것에는 순서가 있어도, 죽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바깥세상은 이것을 우환질고, 운명, 사주팔자로 표현하지만, 우리는 다 죽음에 노출되어 있고 죽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의 모든 유전자가 원래 누구의 것이냐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따르면 사단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다가 심판받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실제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아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할 수 있는 이름을 창세기 3장 15절에 주셨습니다. 저를 따라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거기서는 아직 그리스도라는 말 대신 메시아,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는 해결할 수 없다. 하늘에서 주는 이름, 하나님이 주시는 이름,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되는 이름만이 네 문제를 해결한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따라 우리는 그 이름을 믿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천사를 통해 지키시고, 미래를 준비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고, 천국은 이미 예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을 통해 하나님의 영까지 우리 안에 부어 주셨습니다.

냉정히 보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받을 것을 다 받은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못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리는 것이고, 기쁨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오늘 본문을 간단히 설명함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2장입니다. 120명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아 뜨거워지면서 말하기 시작하는데, 그 말이 다른 나라 말이었고, 그것도 유창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가 왜 그리스도가 되셨는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창세기 3장 15절을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오순절,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에 대해 들었거나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은 이적을 행했지만 죽었다는 것, 부활했다고 하지만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는 소문, 그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20명이 각자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니, 마가의 다락방이 너무 좁아 넓은 곳으로 옮겨 갔고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기 시작합니다. 갈릴리 촌사람들이 다른 나라 말로 유창하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고 있으니, 왜 그런지 설명합니다.

구약에서 다윗이나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던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왔다. 요엘이 예언한 대로, 말세가 되면 하나님의 영이 부어져 예언하고 방언한다고 했는데 지금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이 왜 계시는가.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이다. 왜 보내셨는가.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죽은 것만 알고, 부활을 훔쳐 갔다는 가짜 뉴스만 믿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직접 본 증인이다. 이 말에 사람들의 마음이 열렸고, 우리가 그동안 속았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답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분을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삼으셨으니, 그분을 마음에 모셔라.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이 너희 안에 들어간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 사람이 무려 3천 명이었습니다.


네 번째. 오늘 본문에서 중점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부분

오늘은 예수님을 경험한 정도에 따라 사람들을 여섯 부류로 나누어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

당시 전 세계 인구는 약 1억에서 2억 5천만 명, 그중 이스라엘 땅에 사는 사람은 100만에서 150만 정도였습니다. 그 나머지 대다수, 우리의 육체적 조상을 포함한 한반도의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을 전혀 모른 채, 눈에 보이는 대로, 먹고 싶은 대로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른 신에게 제사하고 죽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세상 많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기적만 본 사람들

이스라엘 땅의 100만에서 150만 명 정도는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고 병자를 고치고 5천 명, 2만 명을 먹이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렀습니다. 자기 문제가 해결될 때만 관심 있고, 성령강림이나 전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죽음까지 본 사람들

몇천 명 정도 되는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장 비참하고 나약하게 죽는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 이후로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기며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부활까지 본 사람들

바울이 나중에 표현한 대로 최대 500명 정도였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나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동참한다는 것까지는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의 승천까지 본 사람들

120명까지 줄어듭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시는 모습을 보고, 저분은 하나님 우편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여섯째, 성령강림까지 경험한 사람들

사도행전 2장의 그 120명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요청하시어 성령이 안으로 들어오시니, 이제는 스물네 시간 하나님을 모시고 다니며 교통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른 사람들입니다.


다섯 번째. 오늘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이 다섯 가지는 순차적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에서 시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모든 문제가 끝나고, 마귀가 물러가고, 그다음 세계 복음화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성장기와 쇠퇴기와 소멸기를 거치지만, 정신적, 영적 성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각자 신앙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성경을 얼마나 읽었는가, 기도를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얼마나 누리고 얼마나 적용하느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 속에서 열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속인의 건물이나 다른 종교 시설을 볼 때는 열이 안 나오는데 유독 교회를 보면 열이 났습니다. 비정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는 그리스도로 계속 그 마음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최종 목적은 예수는 그리스도를 누려서 증인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번 병원 생활 중에도 계속 옆에 계신 분들을 위해 기도했고, 결국 몇 분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장 받아들이지 않으신 분에게는 교회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게라도 해서 마지막 끈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성령을 보내셨고,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세계 복음화의 증인으로 응답받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과 생각과 지혜를 열어 주셔서, 우리의 욕심과 야망을 위해 그리스도를 이용하는 한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가 경험한 증거를 통해 많은 제자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무궁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말씀 붙잡고 응답받기를 소원하는 주의 모든 사명자들과 내안에교회 성도님들과 이 시간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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