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주일말씀
성령은 자녀 신분을 증언하신다
본문. 로마서 8장 12절부터 17절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은 자녀 신분을 증언하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금년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성령강림 이후 신앙생활이 어떻게 달라졌고, 성도의 신분이 무엇이 달라졌으며, 성령께서 실제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에 대해 계속 새롭게 갱신되어 가는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해 참 많은 말을 들어 왔습니다. 성령강림, 성령 충만, 성령 인도, 성령의 열매. 그러나 그것이 실제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잠깐 잠깐 스쳐 들었을 뿐, 집중적으로 깊이 아는 시간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성령강림 후 27주까지 이어지는 이 여정 가운데, 오늘 여섯째 주일에는 성령은 자녀 신분을 증언하신다, 이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오늘도 다섯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번 주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였는가
사모님의 입맛 앞에서
이번 주에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모님이 편찮으신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입맛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계속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입맛이 좀 살아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입맛이 다시 떨어지면 초조해지고, 그렇게 오르내림이 이어졌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는 입맛이 살아나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다시 토하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속에 짜증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 입맛을 어떻게 맞춰 드려야 하는가, 그 고민이 계속되었기에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계속 불렀습니다.
정말 도저히 안 될 때는 다시 둘이 얼굴을 마주하고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함께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자꾸자꾸 단계를 하나씩 넘어가고 있습니다.
꼰대의 마음을 마주하다
또 한편으로는 제가 나이가 들면서 이 마음속에 꼰대 기질이 정말 많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자꾸 부르면서 그 꼰대 기질이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저 자신에게서 봅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을 볼 때 이 안에서 대부분 나오는 것이 기도 제목이 아니라 비판이고 정죄이기 때문입니다.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 저것은 저래서 문제다, 계속 그런 결론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대화라는 것은 지금 현실을 함께 보고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를 나누는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대화를 할 때 지금 현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머릿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과거 이야기만 자꾸 꺼내 놓고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요즘에는 사모님이 아프시니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억지로라도 운동을 시켜 드려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곧장 옛날 이야기로 흘러가 버립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 든 시니어들의 공통된 문제라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올라오면 곧장 그 이름을 부르며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무엇이 보이는가. 지금 이 자리에서 특이한 것이 무엇인가. 저 하늘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의도적으로 현실을 보면서 대화를 이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이 부분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대하는 마음
제가 사람을 볼 때나, 교회당을 볼 때나, 건물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건 저래서 그렇지, 이건 이래서 그렇지, 하며 안에서 평가가 자동으로 이어졌고, 그 평가의 대부분은 결국 정죄와 비판이었습니다. 이 흐름을 계속 깨는 일이 이번 주에 정말 많았습니다.
특히 저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때, 다른 목사님들을 대할 때, 성도님들을 대할 때, 그리고 다른 교회당을 볼 때, 99.9퍼센트가 비판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여러분께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표시도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계속 부글부글 끓으며 정죄만 올라옵니다.
그것을 계속 깨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달라지는 모습이 조금씩 보입니다. 교회당을 보면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성도님들을 보면서, 아 저 교회는 이런 자리에 있구나, 저 사역은 저런 흐름 안에 있구나, 하며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점으로 자꾸자꾸 옮겨 가고 있는 저 자신을 봅니다.
큰 교회 앞에서 인사하시던 그 한 분
오늘 아침에 예배드리러 오면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여기 오는 길에 아주 큰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그 교회를 지나가는데, 그 앞에서 인사하시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여기 송파구 구청장에 출마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김없이 그 자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속에서 곧장 어떤 생각이 올라왔을 것입니다. 저 사람 뭐 하는 거지, 정치인이 표 얻으려고 저러는 거 아냐, 저런 자리에서 저러는 게 얼마나 진심이겠어. 이런 정죄가 곧장 튀어 나왔을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대통령이 장로가 되시려고 몇 년 동안 교회 주차장에서 봉사하셨다는 이야기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순간 그런 생각이 스치기는 했습니다. 저분도 그런 뜻으로 저러시는 건가.
그러나 그렇게 한참을 신실하게 인사하고 계시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야, 저 모습도 어쨌든 대단하시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그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 뭐 이렇게 하냐, 하는 정죄만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객관적으로 좀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저를 이렇게 바꿔 놓았습니까. 저를 따라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변함없이 제 속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를 계속 부르고 있고, 고백하고 있고, 선포하고 있고, 생각날 때마다 또 부르고 있으니, 조그마한 생각 하나조차 슬로우비디오처럼 서서히 지나갑니다. 빠르게 지나가 버리지 않고 서서히 지나가기에, 그 자리를 다시 예수는 그리스도로 점령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번 주 성경 전체를 볼 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성경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자리는, 오늘의 인간이 왜 지금 이 상태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에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발견한 사실
이번 주에도 두 살짜리 아이, 세 살짜리 아이, 그리고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을 돌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분명히 느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를 시키면 잘 하지 않습니다. 사탕을 하나 쥐어 주면 그때 웃으면서 예수는 그리스도, 한 번 하고 지나갑니다.
집에 가서 다시 해 보자고 해도 잘 하지 않습니다. 밖에서도 잘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무런 자극 없이 자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예수는 그리스도가 튀어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나오지 않습니다. 그 아이 안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말은 무엇입니까. 학원에서 배운 영어 문장, 유튜브에서 본 어떤 장면, 그것들뿐입니다.
그러면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도,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의 안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새로 심겨져야 하고, 계속 반복해서 교육되어야만 겨우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무엇을 알게 됩니까.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의 그 사건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바깥에 있던 것이 안으로 들어와 나가지 않는다
바깥에 있던 사단, 바깥에 있던 사단의 습성, 바깥에 있던 사단의 권세, 바깥에 있던 사망과 죽음과 질병과 저주가 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그저 잠시 안에 머물다 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육체 안에, 정신 안에, 생각 안에, 그리고 유전자 안에 그대로 들어와 다시 나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태어날 때부터 곧장 튀어 나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상태에서 자동적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아시고도 우리에게 최초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딱 주신 이름이 있습니다. 살 수 있는 이름, 구원할 수 있는 이름, 축복과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이름이 이미 그때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라는 이름입니다.
자녀의 신분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 15절의 그 이름을 부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의 주제가 바로 여기서 열립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 15절부터 그리스도인은 그 이름을 부를 때 자녀의 신분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점은 자녀입니다. 자녀 신분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자녀가 되기 위해 무엇을 노력해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신분이 이미 주어졌구나. 자녀라는 권세가 이미 주어졌구나. 그 권세를 활용하고 그 권세를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구나.
세 번째. 창세기 3장 15절을 기반으로 오늘 본문을 간단히 설명함
창세기 3장 15절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약속이 구약 성경 전체의 주제였고, 마침내 신약 성경에 그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예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다 이루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 성령은 어디에 보내지셨습니까. 바로 인간의 육체 안입니다. 이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시고, 안에서 계속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로마서까지
예수님의 승천은 사도행전 1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부터 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활동하시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사도행전 2장부터 28장까지 이어지는 그 흐름 안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 바로 로마서 1장부터 16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 로마서 8장입니다. 8장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며 말한 것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은 무엇을 계속 증거하시느냐.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것을 성령이 우리 영과 더불어 계속 증거하신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로마서 전체 지도 한번 보기
이 부분을 조금 더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로마서는 1장부터 16장까지 있는데, 오늘 하나님의 자녀라는 측면에서 로마서 전체 흐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장은 왜 인간이 스스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가, 그 근본 문제를 다룹니다. 2장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행위로는 결코 자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룹니다. 3장은 자녀가 자격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되는 것임을 밝힙니다. 4장은 자녀는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 됨이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 곧 믿음으로만 되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5장은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자녀의 길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으로 다시 이어짐을 말합니다. 6장은 자녀가 된 사람은 이제 죄의 종으로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룹니다. 7장은 자녀가 되었어도 육신과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현실을 다룹니다.
그리고 8장이 오늘 본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계속 증거하시니, 이제는 넉넉하게 싸우고 이길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선포입니다.
9장부터 16장까지는 그렇게 자녀가 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다룹니다.
이렇게 로마서 전체의 지도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고, 오늘은 그 지도 위에서 8장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 오늘 본문에서 중점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부분
성령강림 여섯 주간의 흐름 정리
오늘은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입니다. 지금까지 여섯 주에 걸쳐 어떤 흐름으로 왔는지 개괄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주는 성령강림이 곧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가장 완벽한 증거라는 주제였습니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령이라는 단어가 계속 등장하는데, 그 성령이 어디에서 뚝 떨어진 분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이 개념을 먼저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은 무당의 어떤 강림 같은 신비 체험도 아니고,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신비주의적 사건도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영,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계셔야만 보내지는 영, 그것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둘째 주는 성령은 어디에 계시는가, 인간의 육체 안에 계신다는 주제였습니다.
셋째 주는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과 성령강림을 체험한 사람 사이의 비교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성령은 인간의 생각 속에 들어오시고, 생각 속에서 역사하시며, 생각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그 생각 속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계속 증거하신다는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섯째 주의 결정적인 자리가 이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내 생각 속에서, 무엇을 증거하시느냐.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뿐 아니라, 그분 안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출발은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과 저 안에 계신 성령께서 계속 증거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것을 증거하십니다.
저를 따라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신앙생활의 모든 출발점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하는 순간, 요한복음 1장 12절에 따라 자동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과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럴 때 도대체 언제 그분들이 영접한 것인지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 성령이 임재하신 이후부터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이후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전한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 마음속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라, 이 선포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 이후의 모든 시대는 영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영접이란 무엇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함으로 성령이 이 안에 들어오시는 사건입니다.
성령이 이 안에 들어오시면 그다음에 자동으로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시 함께 고백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신앙생활의 모든 출발, 모든 기반, 모든 기본, 모든 기초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부터 확인하고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가장 밑바탕에서 무엇을 증거하고 계십니까.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이 너를 지키신다. 하나님이 너를 보호하신다. 하나님이 너를 책임지신다. 하나님이 너를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신다. 너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천사를 통하여 너를 보호하신다. 너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영혼까지 책임지신다.
이 모든 것의 가장 밑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입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것이지만, 그 고백의 자리에서 성령께서 그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고백이 가능한 것입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들은 이야기
여기서 우리가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바깥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종교 생활을 하시는 분들, 교회 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한번 보십시오.
저는 아침마다 설교를 준비하러 가는 카페가 있습니다. 8시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그러면 한 9시 반쯤 되면 꼭 어떤 분들이 옆자리에 앉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카페 바로 옆에 성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성당이 있는데, 그 성당에서 나오시는 분들이 카페로 들어와 앉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유심히 들어 봅니다. 안 들으려 해도 들립니다. 아, 이번에 우리가 이것을 했더니 성모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셨다. 그런 식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앞자리에는 세 분이 앉아 계셨고, 그중 한 분은 아마도 지도하시는 분 같아 보였습니다. 그분이 이번 주에 우리가 이것을 했고, 저것을 했다, 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가시는데, 그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들렸습니다.
내가 이것을 하면, 내가 저것을 하면, 내가 공덕을 쌓으면, 내가 헌금을 하면, 내가 봉사를 하면, 내가 충성을 하면, 내가 신부님께 어떻게 하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겠지. 하나님이 나를 축복해 주시겠지. 하나님이 나를 이 정도까지는 보호해 주시겠지.
그러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힘든 일이 닥치면 결론이 이렇게 흘러갑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봉사를 안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치신 것이다. 그러니 더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흐름이 뭐 같은지 아십니까. 채바퀴 도는 다람쥐와 같습니다. 그러니 종교인들은 죽기 전까지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죽기 전까지 마음 가장 밑바닥에 평안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공덕을 쌓아도, 그 공덕의 자리에서 사단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야, 더 쌓아야 돼. 이것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인간의 수준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쌓고 또 쌓고, 죄를 짓지 않으려 애쓰고 또 애써도, 그것은 결국 인간의 수준일 뿐입니다. 내 수준이나, 나보다 조금 나은 사람의 수준이나, 내가 지금 가진 돈이나, 나보다 몇 배를 가진 사람의 재산이나, 인간들끼리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지만, 결국 다 인간의 수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을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지구를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태어나기로 스스로 결정해서 태어났습니까. 이 세상 이후의 세계를 내가 어떻게 좌우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세계를 만드신 분의 기준에서 보면, 우리의 노력은 아무 기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결론에 이르러야 합니까. 내 노력으로, 내 열심으로, 내 선행으로, 내가 무엇을 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구나. 그렇다면 결국 외부에서 누군가가 이 일을 대신해 주셔야만 가능한 것이구나. 그렇게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이 답을 얻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누군가가 오시지 않으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다시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 신앙은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은 이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 15절에 그리스도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그분이 오셨다. 그분이 예수이시다. 그리고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시어, 이제 내 마음을 지키셔야 하고, 내 육체를 지키셔야 하고, 내 생각을 지키셔야 하기 위해 내 안에 들어오신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어떤 자리에서 자녀 됨을 증거하시는가
이 성령께서는 안에서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넌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다, 라고 증거하십니다.
특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절실히 필요한 자리가 어디입니까. 이 예배 자리에서는 사실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함께 예배드리고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예배가 끝난 다음, 밖으로 나가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는 그 시간입니다.
친구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와 함께한다 하더라도, 결국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그 혼자의 시간에 안에서 무엇이 올라옵니까. 섭섭함이 올라옵니다. 답답함이 올라옵니다. 짜증이 올라옵니다. 분노가 올라옵니다.
이 생각들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이신 그리스도, 그 이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계속 그 이름을 부르셔야 합니다.
자녀 신분이 가장 흔들리는 순간
세 번째로 오늘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가장 흔들리고 헷갈리는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성공보다 실패에 가까운 자리에 섰을 때, 상상도 못한 어떤 일이 벌어져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닥쳤을 때,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을 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속에서 무엇이 튀어 오릅니까. 야, 너 망했잖아. 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옵니다. 너 하나님의 자녀 아니야? 그런데 왜 기도 응답도 못 받았어?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잖아.
그 흐름이 결국 어디로 우리를 끌고 갑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아니라,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으로 끌고 갑니다. 종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때 그 생각을 그냥 놔두면 곧장 그리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저를 따라 함께 고백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창세기 3장 15절 안에 이미 예고된 싸움
우리가 여기서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이미 우리가 싸워야 할 상황이 함께 예고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그 선포는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가 싸워야 하는 자리가 반드시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은 가만히 있다고 마음이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다고 생각이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에서 무엇이 자동으로 올라옵니까. 다 하나님이 없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쪽으로 흘러갑니다.
바닷물에 던진 돌 하나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바닷가에서 자랐습니다.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바닷물이 있는 곳에 돌 하나를 던지면 어떻게 됩니까. 0.001초, 아니 그보다도 짧은 순간에 그 돌은 자취를 감추고 다시 그저 바닷물이 됩니다.
우리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아무리 성령을 통해 붙잡고 부른다 하더라도, 가만히 부르지 않으면 속에서 곧장 무엇이 나옵니까. 자녀가 아니라는 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조금만 지나면 어느새 나는 다 망해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 자리로 흘러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초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그 상황을 아시기에, 안에서 계속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사실을 나에게 고백하게 하시고, 그것을 계속 심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오늘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저는 신앙생활을 오래 해 왔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참 많이 헷갈렸습니다. 응답받고 기분 좋았던 순간보다, 안 되어서 답답했던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왜 그러했겠습니까. 가장 기본이 되는 것,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할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기본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신분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삶에서 배우는 자녀 신분
그런데 가만히 보십시오. 지금 우리 곁에 한 살짜리 아이, 세 살짜리 아이, 여덟 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보는 얼굴이 누구입니까. 자기 엄마, 자기 아빠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먹을 것을 챙겨 주고, 입을 것을 챙겨 주고, 잘 곳을 마련해 줍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자꾸자꾸 인식해 갑니다. 아, 저분이 나의 아빠구나. 저분이 나의 엄마구나. 삶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자녀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그 아이에게 주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녀 신분이 그저 삶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 주에 이 말씀을 저의 삶에 적용해 본다면 이것이 됩니다. 나는 이 세상을 지으시고 이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신분이 가장 밑바탕에 있으므로, 이것을 계속 고백하며, 그 고백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힘든 일이 닥칠 때 먼저 지켜야 할 것
내가 설령 어려운 일을 만나든, 힘든 일을 만나든, 안 되어지는 일을 만나든, 그때 여러분과 제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입니다.
다시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를 먼저 지켜야 합니다. 나를 지켜야만 그다음이 보입니다. 계속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안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를 고백해야만,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 생각을 다른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키지 않고 그저 내버려 두면 생각은 자동으로 다른 길로 흘러갑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간도 내 마음을 지키시고, 자동으로 흘러가려는 생각을 붙드시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힘든 일이 생길 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신분을 계속 지키시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마무리 기도
우리 다 함께 말씀 붙잡고 1분 동안 각자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이 시간의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이 주의 복음 위에 온전히 쓰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이 내 안에 계실 뿐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계속 증거하시고 증언하시오니, 내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집중적으로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권세를 끊임없이 회복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나 혼자 있을 때, 밤늦은 시간,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없는 그 자리에서, 마음속에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권세로 그 모든 어려움과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이겨 낼 수 있도록 주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무궁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말씀 붙잡고 응답받기를 소원하는 주의 모든 사명자들과 내안에교회 성도님들과 이 시간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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