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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0.내안에교회 주일말씀 — 성령강림 후 열넷째 주일

주일말씀 — 성령강림 후 열넷째 주일

성령은 우리의 생각을 복음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부제. 거룩은 생각하기도 전에 흘러가던 그 자리에서 새로워집니다

본문. 로마서 12장 2절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 후 열넷째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은 우리의 생각을 복음으로 새롭게 하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주 거룩이 오늘 어디로 내려오는가

지난주 설교 제목이 거룩함이었습니다. 저는 늘, 거룩하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이 항상 깨끗해야 하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태까지 많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거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거룩하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바뀌어, 그 존재가 계속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 그것이 거룩이라면 해볼 만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 거룩이 실제 삶의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를 다룹니다. 곧 우리의 생각, 생각하기도 전에 흘러가던 그 자리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다섯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번 주에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였는가

먼저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저는 예배드릴 때만이 아니라, 목사로서 사역하는 자리에서도, 바깥에서 개인 생활을 할 때에도 계속 그 이름을 부릅니다. 무의식적으로도 부릅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부르다 보니 제 마음을 지키게 됩니다. 그러나 지키면서도 새로운 사건이 오면 속에서 계속 전쟁이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다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이겼다는 것은 결론적인 이야기이고, 저는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병원 가는 길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이번 주에 크게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배우자가 실업급여 문제로 갈등을 겪은 것인데, 그건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훈련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가는 현장이 있습니다. 저기 큰 병원입니다. 이번 주에도 세 번은 갔는데, 정말 피곤해서 억지로 간 때도 있었습니다. 가면서 또 기도했습니다. 오늘도 어차피 가고 오는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무슨 계획이 있으신지 헤아리며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비가 와서 안이 꽉 찼는데, 돌아오는 길에 제가 아는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모르는데 저는 그를 압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역사 선생님으로 퇴직해 연금을 넉넉히 받고, 자녀는 다 좋은 회사에 다니고 사위는 외교관이며, 영종도 호텔 객실을 사서 이제는 한 층을 통째로 운영한다고 합니다. 듣는 이야기가 너무 잘됩니다.

그 이야기가 열등감을 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서 저에게 질문이 옵니다. 너는, 너는 어떠냐. 제가 사로잡히는 것이 바로 열등감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오면 곧바로 열등감이 올라옵니다. 갑자기 들으면서 벌써 마음이 반응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속이 고구마를 잔뜩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짜증이 확 났을 텐데, 이번에는 제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 녀석 또 오는구나 하면서,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며 그 생각을 몰아냈습니다. 도리어 제가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다 들으니, 그 친구에게 신앙은 기독교가 조로아스터교에서 내려왔다는 역사 이야기일 뿐, 본인이나 자녀나 실제 신앙과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열등감도 밀려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친구는 참 잘 살고 있지만, 이 세상 배경에 층층이 있는 영적 세계는 모르고 있구나.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구나.

돌아와서 저는 영적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속의 열등감을 몰아내는 싸움이었고, 또 내가 가진 것, 곧 예수는 그리스도 외에 내세울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늘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매 순간 저 자신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여러분보다 제가 더 심할 것입니다. 저는 제 마음을 더 깊이 알고, 무엇이 오는지 더 깊이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차이는, 저는 더 깊이 알아채고 있고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채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뿐입니다. 제 마음이 깨끗하다거나 싸움이 없다고 여기신다면 저를 착각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두 번째. 이번 주에 창세기 3장 15절을 어떻게 더 깊이 알게 되었는가

성경에서 제가 가장 중심으로 보는 것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항상 그것을 배경으로 봅니다.

사단은 가장 정중한 질문으로 옵니다

이번 주에 또 느낀 것이 있습니다. 뱀을 통하여 마음속에 질문이 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동산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은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입니다.

이것을 확대해 보면, 오늘날 사단은 어려운 곳으로 오지 않습니다. 항상 가장 친한 사람, 가장 친숙한 조건, 가장 익숙한 환경에서 옵니다. 무엇으로 옵니까. 질문으로 옵니다. 아까 그 친구를 만났을 때도, 야 너는 어떠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말투가 얼마나 공손하고 정중하고 젠틀한지 아십니까. 야 그런데 너는 어때,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눈치를 못 채고 당했지만, 지금은 눈치를 챕니다. 너 또 왔구나 하고 알아챕니다. 그러니 갑자기 그 정체가 들통이 납니다.

창세기 3장 15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정중하게 옵니다. 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는 질문이 딱 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속에 자꾸 싹이 돋아나고, 결국 망가집니다. 그런데 망가지는 것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답을 주셨습니다

저는 예전에 항상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만 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에서 바로 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짜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저를 따라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창세기 3장에서 다 망가졌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오셔서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라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네가 그것을 받아 네 마음속에 이미 들어와 다 망가뜨리고 있는 그 생각을 몰아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절 이전에는 이 안에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장 이후부터는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바깥을 보는 모든 것은, 먼저 이 안을 정리하고 무언가를 몰아낸 다음에 다시 봐야 합니다. 저 바깥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 자녀의 신분이 회복되고, 말씀이 회복되고, 말씀의 깊이를 알게 되고, 하나님이 지금도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것을 주셨다는 것을, 이번 주에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창세기 3장 15절을 배경으로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을 설명함

오늘은 로마서 12장을 읽었습니다. 사실 내안에교회는 여태까지 복음서를 중심으로 강의식으로 나눠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음서는 알아도 구약이나 신약의 다른 부분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열넷째 주일을 맞아 로마서 12장을 선택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오순절까지

구약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이 창세기 3장 15절, 곧 여자의 후손이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다가 신약에서 드디어 그분이 오셨습니다.

저를 따라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복음서를 하나의 핵심으로 따지면, 예수가 그리스도이신데 바로 그분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의 내용입니다. 성령이 오셨는데 한 명이 아니라 백이십 명에게 왔고, 그들이 증거하니 삼천 명이 되고, 나중에는 남자만 오천 명이 넘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오순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자리에, 로마에서 온 나그네와 유대인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 자기 나라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대략 주후 33년입니다.

로마로 돌아간 그들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속 말씀하시고 이끄시고 증거하시다 보니, 차츰 가족이 변화되고 주변 사람이 변화되면서 자생적으로 교회가 생겼습니다. 어느 한 사도가 세운 것이 아니라, 복음이 사람을 타고 흘러가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이유

그러다가 사도행전 13장부터 바울이 등장합니다.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하는데, 3차가 끝난 때가 대략 주후 57년경입니다. 그때 바울은 그 시대에 가장 두각을 나타내던 지도자였습니다.

그 바울이 로마에 가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다 보니, 로마 교회에 문제가 보였습니다. 복음을 알기는 아는데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게다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갈라져 서로 옳으니 그르니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정리하려고 주후 57년경에 쓴 것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복음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를 쓴 것이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쓴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전체의 구조이고, 오늘 본문은 그 후반부의 첫머리입니다.


네 번째. 오늘 본문에서 중점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부분

로마 교회는 이미 이십삼 년을 지나온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우리가 기본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주후 33년부터 57년까지, 적어도 이십삼 년이 흐른 교회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초신자가 아닙니다. 이제 막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기반이 갖춰진 사람들입니다. 이미 세워진 결론이 있었습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그 기반이 갖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십삼 년간 두각을 나타내는 지도자는 없었지만, 자생적으로 교회가 생겨 예수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각 개인을 관리하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양육하시는 가운데, 로마에 교회가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 바탕이 있는데도, 바울이 볼 때는 마지막으로 기초를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곧 로마서 12장은 아직 안 믿는 사람에게 믿으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여기까지 온 사람에게 이제 그 복음이 너의 생각까지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로마서 12장 전체를 강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중 2절을 근거로 이어 가겠습니다.

열넷째 주까지의 흐름

잠깐 여태까지의 흐름을 요약하겠습니다. 성령은 가장 기초적으로, 예수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아버지 하나님이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영이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러니 성령은 출처 없이 떠도는 귀신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오신 영입니다.

이 성령이 제자들의, 곧 우리의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의 생각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자녀 됨의 사인이자 미래의 보증으로 계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이끄십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주간들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성령께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생각은 두려움에서 자기 보호로 흘러갑니다

이것은 실제 생활에 관계된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려면 생각이 새로워져야 하고, 생각이 새로워지려면 우리에게 오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사람은 어떤 생각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두려움이 생깁니다. 왜 두렵냐면,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돈과 체력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그다음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비난하고 회피하고 불안해하며 다 바깥으로 쏘아붙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 안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기주의라 하고 두려움이라 합니다. 오늘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실업급여를 두고 흘러가던 생각

실제 예를 들겠습니다. 배우자인 사모님이 이번 주에 다쳤는데 실업급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신고 기간을 놓쳤나 봅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뵈니, 치료받은 증거가 없으니 나은 것 아니냐 하고, 사모님은 지금 아파서 못 나왔다 하며 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갔다 온 다음에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 의사 선생님이 신청서를 안 써 주는구나 하고 결론을 내리니, 속에서 밀려옵니다. 뭐 먹고 살지, 당장 돈은 어떻게 하지, 나는 저것을 받아야 하는데. 두려움과 짜증이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그 생각이 쭉 흘러갑니다. 밤이 되면 더 깊이 옵니다. 사모님도 밤에 잠이 안 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친구를 만나 열등감이 흘러간 것과 같습니다. 가볍게 오는 질문 하나를 받아들이면, 생각이 자꾸 커져서 저 끝까지 갑니다. 제일 끝에는 절망과 두려움과 짜증과 분노가 쌓입니다. 이것이 흘러가는 패턴입니다.

예전에는 며칠씩 헤맸습니다

저는 옛날에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아 나는 다 못해 하며 무너졌습니다. 가라앉을 때까지 어느 때는 삼 일, 어느 때는 이 주가 걸렸습니다. 바람 쐬고 외식하고 하소연하면서 감정이 줄어드는 것이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청소년기에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의 사모님과 사 년을 연애했는데, 손 한 번 잡거나 하면 속에서 야 너 죄지었잖아 하는 것이 일주일 내내 왔습니다. 그 하나로 일주일을 헤맸습니다. 월요일만 되면 완전히 쭈그러들어, 네가 전도사인데 그것도 못 이기냐 하는 생각에 숨이 막혔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알잖아요.

그 이름을 부르니 고리가 끊어졌습니다

이것을 가만히 보면, 성령이 네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은 결국 생각의 문제입니다. 무언가 오면 질문이 오고, 생각이 쫙 흘러갑니다. 그때 제가 항상 훈련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를 따라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자꾸 부르다 보니, 일주일 걸리던 것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생각이 딱 연결되는 고리가 있는데, 그 연결이 어느 순간 끊어졌습니다. 끊어지는 지점이 자꾸 앞당겨지면서 헤매는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번 주 사모님 일이나 친구 일도, 예전에는 저 끝까지 갔을 텐데 중간쯤에서 끊어졌습니다. 질문이 오면, 아 저것은 나를 완전히 이상하게 만드는구나 하고 그 정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완벽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런데 중간을 끊을 때에도 또 오는 것이 있습니다. 너 실패했잖아, 너 또 졌잖아, 너 이 정도밖에 못 하잖아. 최측근처럼 다가와 죄책감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한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에 이미 물들어 있어, 죽을 때까지 변하는 것은 일부입니다. 예수님도 완벽한 제자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을 불러 삼 년 반을 훈련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삼 년 반이 지난 뒤에도 그들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고, 전혀 죄짓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죽을 때까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고,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 목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계속 부르고 누리고 있느냐입니다. 속았으면, 아 내가 속았구나 하고 다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지, 그것으로 인한 죄책감이나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부르면 현실이 보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른다고 해서 내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면, 그 이름을 부르니 현실이 보입니다.

실업급여 문제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실제 데이터와 내 속의 상상이 구분되지 않아, 나중에는 실제는 없고 상상만 남습니다. 그런데 자꾸 부르다 보면 실제와 상상이 구분됩니다. 눈이 상상이 아니라 실제에 집중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까로 갑니다. 그러면 해결책이 나오고, 또 그 이름을 부르니 그 해결책을 감당할 힘이 생깁니다.


다섯 번째. 오늘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먼저 나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다시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지금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창세기 3장에서 벗어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을 통하여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고 사실입니다. 자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세계 복음화를 향해 가고, 마귀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러갑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며 살기 위해 해야 할 것이 다시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어떤 과정을 다 마친 결론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고, 완벽한 인간이 목표도 아닙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계속 부르십시오. 부르면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될 근거가 보입니다. 진짜 객관적인 데이터와 내 상상이 구분됩니다. 상상은 잠깐 제쳐 두면 제쳐집니다. 그러면 내가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이고, 그럼 또다시 그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그렇게 현실을 차근차근 진행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보면 방법이 나오고, 그 방법을 실행하려면 또 예수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다 잊어버린다 해도, 그 이름을 찾고 부르다 보면 자꾸자꾸 생각이 새로워집니다.

저의 이번 주 간증

결론 삼아 제 간증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에 싸웠습니다. 그러나 많이 밀려오지는 않았습니다. 빡 갔다가도 다시 줄어들고, 또 갔다가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봤습니다. 어 나 지금 뭐 하지 하고 보니 제가 할 일이 생겼고, 항상 현실에 집중하며 일하고 있는 저 자신을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번 한 주간도 계속 그리스도를 부르시고, 그것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무리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성령으로 함께하십니다. 다만 우리 마음속의 생각은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로 인하여 완전히 죄 가운데 있고, 사단 가운데 뒤집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이 내 안에 계셔서, 나의 생각을 지키시며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인하여 결국 모든 행동으로 가도록,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가운데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게 하시고, 현실 가운데 방법을 찾게 하시며, 그 방법을 감당할 힘을 주시고, 차근차근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사실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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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었다고 참인 것은 아니다 앞 단계에서는 자동 결론이 행동을 대신 결정하기 전에 짧은 틈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때 자연스러운 반론이 생깁니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어도 다른 말을 하면 생각이 잠깐 멈추는 것 아닌가?” 그럴 수 있습니다. 관찰1부터 세 번 미뤄 온 이 비교를, 오늘 약속대로 정면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 첫 답은 회피가 아니라 인정입니다. “잠깐 멈춰”, “아직 모른다”, “지금 할 일 하나”, “먼저 확인하자” — 이런 문장도 생각의 흐름을 바꾸는 중단점으로 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단계에서는 어떤 문장이 가장 강한지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두 질문을 구분합니다. 문장이 순간적으로 어떤 기능을 했는가? 문장이 주장하는 내용은 실제로 참인가? 1. 같은 기능을 해도 의미는 다를 수 있다 문장 주된 의미 잠깐 멈춰 진행 중인 흐름을 중단하라는 명령 아직 모른다 현재 정보만으로 결론 내릴 수 없다는 확인 지금 할 일 하나 행동의 범위를 한 가지로 좁히는 지시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존재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 네 문장은 모두 생각의 흐름을 잠시 바꾸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지금 할 일 하나”는 행동에 관한 말이고, “아직 모른다”는 정보의 한계를 확인하는 말이며, “예수는 그리스도”는 예수가 누구인가에 관한 주장입니다. 순간적 기능이 비슷하다고 의미까지 같아지지는 않습니다. 한 줄로 미리 말해 두자면,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 곧 인류의 근본 문제를 풀러 온 구원자를 뜻하는 말이고, 이 문장은 예수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주장입니다. 그 뜻과 근거를 제대로 검토하는 것은 관찰5의 몫입니다. 여기서는 “이건 기능이 아니라 이런 종류의 주장이다”라는 위치만 잡아 둡니다. 2. 도움이 됐다는 경험이 진리를 증명하지 않는다 시험을 앞두고 “나는 반드시 합격한다”고 말한 뒤 마음이 안정되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문장은 일정한 기능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안정됐다는 사실...

[내안에교회 초급훈련 A1] 아무 느낌이 없을 때, 멈추지 않는 방법

아무 느낌이 없을 때, 멈추지 않는 방법 솔직하게 이야기해봅시다. 당신은 "예수는 그리스도" 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 느낌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이 올라옵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는 거지?" "나는 전이랑 완전히 똑같은데?" "이건 괜히 시간 낭비 아닌가?" 바로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멈춥니다. 그런데 멈추기 전에 질문 하나만 더 해봅시다. 당신에게 정말 아무 변화도 없었던 걸까요? 아니면 "즉각적인 체감이 없었다" 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결론을 너무 빨리 내린 걸까요? 느낌은 변화를 측정하는 가장 늦은 지표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효과가 있다면 즉시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구조적인 변화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운동을 시작한 첫날에 근육이 눈에 보입니까? 당신이 투자를 시작한 첫날에 수익이 확정됩니까? 당신이 약을 한 번 먹었다고 병이 바로 낫습니까? 대부분의 변화는 아주 미세한 틈에서 시작됩니다.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자동으로 흘러가던 흐름이 1초라도 느려졌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완벽하지 않네. 그렇다면 무효야."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체감이 없으면 그 즉시 실패 판정을 내려버립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를 불렀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끝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급함입니다. 그래서 기록을 사용합니다 이번에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판단해봅시다. 당신은 논리적인 사람 아닙니까? 그렇다면 실험해봅시다.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확신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측정하자는 겁니다. 7일 기록 실험 방법 오늘부터 7일 동안, 당신은 하루에 딱 1분만 투자합니다. 매일 이 세 가지를 기록하십시오. 오늘 하루 동안 당신이 "예수는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