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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교회 주일말씀 — 성령강림 후 열한째 주일 2026.08.09. 성령의 인도는 내 욕망을 따라가지 않게 하십니다

주일말씀 — 성령강림 후 열한째 주일 2026.08.09. 성령의 인도는 내 욕망을 따라가지 않게 하십니다 부제. 예수님을 따르던 그 자리가 오늘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리가 됩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6절부터 18절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 후 열한째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의 인도는 내 욕망을 따라가지 않게 하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내안에교회는 금년에 성령강림절 이후가 스물일곱 주까지 이어지기에, 계속해서 성령을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 오후 예배나 따로 성경을 배울 수 있는 모임 시간이 마땅치 않기에, 이렇게 주일 예배를 맞이하여 성령을 주제로 한 주씩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한편으로는 집중하실 필요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지난 흐름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라는 키워드로, 다섯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번 주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였는가 지난주에 성령의 교통을 다루었습니다. 교통을 오늘날 말로 하면 소통이고, 서로 대화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에 소통하려고 참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대화가 어려운 사람이 대화를 연습하다 제 곁에 있는 배우자인 박효숙 사모는 아주 오래전부터 대화를 참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20대 초반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하나님을 그냥 살갑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무 거부 반응 없이 계속 대화하는 모습을 제가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화하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사실 지금도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고 하면 멀뚱한 제 모습을 봅니다. 무슨 말을 하지. 한마디 하고 나면 그다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희가 살던 시대에는 어릴 때 부모님과 단답형으로만 대화했습니다. 특히 저희 어머니는 완벽하고 고집이 세셔서, 한번 생각하면 그 생각을 끝까지 집요하게 붙드는 분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제 밑바탕에 늘 깔려 있습니다. 쓸데없는 이...

내안에교회 주일말씀 2026.08.02 — 성령강림 후 열째 주일

주일말씀 — 성령강림 후 열째 주일 성령은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는 교통을 이루십니다 부제. 성령은 계셔서 끝나지 않고 나를 하나님과 통하게 하십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13장 13절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 후 열째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은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는 교통을 이루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아홉 주를 한 줄씩 이으면 오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한 줄씩 이어 보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이 어디에 서 있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첫째 주, 성령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십니다. 둘째 주, 성령은 믿는 자 안에 거하십니다. 셋째 주, 성령은 제자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십니다. 넷째 주, 성령은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다섯째 주, 성령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여섯째 주, 성령은 종의 두려움을 자녀의 확신으로 바꾸십니다. 일곱째 주,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치십니다. 여덟째 주, 성령은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홉째 주, 성령은 흔들리지 않는 소속으로 나를 붙드십니다. 그런데 이 아홉 주를 가만히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방향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에게로 내려오는 한 방향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고, 계시고, 말씀하시고, 증언하시고, 인치십니다. 전부 하나님이 나에게 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받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 그 방향이 양쪽으로 열립니다 오늘 열째 주의 주제인 교통은 바로 그 방향을 양방향으로 여는 자리입니다. 지난주까지는 성령이 내 안에 확정되어 계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신다는 것과, 그 계신 분과 내가 실제로 주고받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도장이 찍혀 있는 것과, 그 도장 찍힌 관계 안에서 대화가 오가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이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는 교통을 이루십니다. 교통이라는 말이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말로 바꾸면 소통입니다. 곧 대화이고, 주고받음입니다....

전환편 생각을 멈춘 뒤, 나는 무엇을 따라 선택했는가

생각을 멈춘 뒤, 나는 무엇을 따라 선택했는가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여러 방법을 썼습니다. 사실과 해석을 구분했고, 자동 결론을 잠깐 멈추었고, 반복되는 속삭임을 기록했고, 신호와 행동을 연결했고, 루틴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방법들은 선택할 수 있는 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법 자체가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새로운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실제로 내린 선택 하나를 돌아봅니다. (여기서 “속삭임”은 앞 단계와 같습니다. 자동으로 올라오는 생각의 문장입니다.) 그리고 미리 한 가지. 아래 빈칸을 전부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숙제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실제로 완성할 것은 맨 끝의 정리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1. 한 가지 선택 장면 최근 여러 선택 사이에서 망설였던 장면 하나를 적습니다. 예: 가족 일정과 직장 일정이 겹쳤다 / 불합리한 요구를 참을지 문제 제기할지 고민했다 / 관계를 계속할지 거리를 둘지 망설였다 / 루틴을 계속할지 그만둘지 고민했다 / 교회의 권유를 더 검토할지 중단할지 결정해야 했다. 내 장면 2. 실제로 확인된 사실 해석을 제외하고 확인된 내용만 적습니다. 3. 내 안에서 경쟁한 선택들 선택 A / 선택 B / 다른 선택. 처음엔 두 선택밖에 없어 보여도, 확인과 대화를 통해 다른 선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회로가 다 막혀 결국 하나를 고르고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그 강제 선택의 순간이, 방법이 답을 주지 못하는 자리입니다. 4. 각 선택이 지키려 했던 것 선택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우선하는 판단일 수 있습니다. 선택 지키려 했던 것 감수해야 할 비용 A B 다른 선택 예: 성과 / 안전 / 가족 책임 / 정직 / 관계 / 자유 / 타인의 평가 / 경제적 안정 / 공정성 / 마음의 편안함 / 장기적 결과 / 신앙적 주장. 5. 실제로 가장 크게 작용한 근거 내가 말로 내세운 이유와 실제로 움직인 ...

실험편3 루틴을 놓친 날, 왜 나는 나 자신까지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을까

루틴을 놓친 날, 왜 나는 나 자신까지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을까 루틴이 며칠 유지되다 멈출 수 있습니다. 시간이 바뀌고, 몸이 아프고, 야근이나 아르바이트가 생기고, 가족 일정이 들어오고, 신호 자체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하던 행동을 한 번 또는 며칠 하지 못했다”입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더 큰 판결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나는 역시 끝까지 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미 깨졌으니 다시 해도 소용없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가지를 구분합니다. (여기서 “속삭임”은 앞 단계와 같습니다. 자동으로 올라오는 생각의 문장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새 기록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미 있는 기록을 나누어 볼 뿐입니다.) 미리 한 가지. 아래 빈칸을 전부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숙제가 아니라 자기 기록을 보는 도구입니다. 실제로 완성할 것은 맨 끝의 정리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1. 안정된 날과 흔들린 날을 나누어 본다 새로운 기록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미 남아 있는 기록을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비교적 유지된 날 — 시간과 장소가 비슷했다 / 몸의 피로가 심하지 않았다 / 신호가 분명했다 / 다음 행동이 작았다 / 기록할 여유가 있었다. 흔들린 날 —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 몸이 아프거나 피곤했다 / 감정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다 / 신호 자체를 만나지 못했다 / 해야 할 행동이 커졌다 / 빠진 날을 보상하려 했다. 무엇이 유지되기 쉬운 조건이었고, 무엇이 달라진 조건이었는지만 봅니다. 2. 실제 사건과 자기 판결을 구분한다 실제 사건 (예: 이틀 동안 기록하지 못했다 / 야간 근무로 정한 시간에 실행하지 못했다 / 문장을 말했지만 다음 행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자기 판결 (예: 나는 의지가 약하다 / 나는 끝까지 하지 못한다 / 나는 믿음이 없다 / 이 과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실제 사건과 자기 판결은 같은 문장이 아닙니다. 앞은 카메라에 찍히는 것이고, 뒤는 그 위에 얹은 결론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