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성령강림 후 스무째 주일
제목 성령은 일터의 성과 압박에서 나를 건지십니다
본문 골로새서 3장 12절부터 24절
저는 오늘 성령은 일터의 성과 압박에서 나를 건지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성령강림 후 열아홉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내안에교회는 지금 성령강림 후 첫째 주부터 오늘 스무째 주까지, 계속 성령강림 이후를 시리즈로 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의식주의 영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특히 의식주는,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더 벌어야 한다, 더 있어야 한다, 더 준비해야 한다, 더 저장해야 한다는 그 메시지가 인간 속에서 끊임없이 오고, 그 압력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계속 쌓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계속 밀어내고 물리치며, 또 그 이름의 능력이 계속 우리에게 역사함으로 그 압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더 벌어야 한다는 그 측면에 무엇이 붙어 있느냐면, 더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벌어야 한다는 데는 가정도 있고 직장도 있고 사회의 여러 생활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더 잘해야 한다, 더 뛰어나야 한다, 일등 해야 한다는 것이 같은 맥락으로 연결됩니다. 과연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밀어내고, 어떻게 다시 재해석해야 하는지,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도 다섯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번 주에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였는가.
저를 따라 해 봅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저는 예수는 그리스도를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꿈속에서도 부릅니다. 어쩌면 이것은,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목으로 가기 전까지 한 단체에서 계속 훈련을 받았기에 습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배경이 된 가운데, 이번 주에도 의식주의 영에 대해 계속 묵상했습니다.
특히 저는 한 끼만 안 먹으면 정말 식은땀이 납니다. 이번 주에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일에 집중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 열두 시 사십 분, 오십 분이 넘어가면 몸에서 식은땀이 쫙 밀려옵니다. 그런데 밀려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야 너 이러다가 오늘 힘 다 빠져서 일도 못 해 하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다른 때는 그냥 생각으로 오는 것인데, 이번에는 힘이 쫙 빠지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제 몸으로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때, 어우 나 이러다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결론이 내려져 그쪽으로 흘러갔습니다. 몸은 너는 죽는다, 힘 다 빠진다로 흘러가니 더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실험해 보니 어느 단계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 이것은 그만 실험해야겠다 싶어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렀습니다.
또 이번 주에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면서 정말 느낀 것이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제가 익숙한 가정환경 속에서 그 이름을 불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계속 경험했는데, 이제는 눈이 열려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내 힘으로 정복해야겠다며 도전하다가 힘이 다 빠진 상태에 있었는데, 이제는 도전하되 어떻게 하느냐면, 세상에 오는 수많은 상황을 예수는 그리스도로 계속 밀어내고 재해석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바꾸어야겠다는 마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보이는 모든 것을 다 기도 제목으로 삼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정복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과 28절처럼 말입니다. 그 정복하는 마음이 내가 해야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그리스도로 정복하니, 세상도 정복되는 것만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원리가 정말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정말 어렵고 불가능한 부분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
두 번째. 이번 주에 창세기 3장 15절을 얼마나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가.
성경에서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문제를 근본 문제라고 합니다. 근본 문제가 무엇이냐면, 인간이 선악과를 먹어 바깥에 있던 재앙과 질병과 사단과 모든 우환이 이 안에 들어왔고, 안 나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안에 들어와 때가 되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떠나 있고,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은 태어나서 조금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창세기 3장 때부터 대대로 유전자를 통해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노력해서 되는 것도, 선행을 베풀어 되는 것도, 법을 잘 지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교육을 잘 받아 목사이고 장로여서, 혹은 아버지가 장로이고 목사여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어린아이여서 혹은 노인이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창세기 3장 15절부터 주신 이름이 있습니다.
첫 고백을 해 봅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바깥에서 와야 합니다. 안에 있는 존재가 스스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하나님이 오셔서 바꾸셔야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에 언약을 주셨습니다.
특히 오늘 주제가 성령은 일터의 성과 압박에서 나를 건지신다는 것인데,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과 어떻게 연결됩니까. 근본 문제가 이 안에 들어온 뒤로, 인간은 속에서 자기가 신이니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어떤 형태로 드러내느냐면, 자기가 일을 대단하게 잘해서, 성과를 엄청나게 내서 자기 가치를 드러내려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그것이 창세기 3장부터 계속 나오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창세기 4장, 5장, 6장을 보면 가인이 나오고, 수많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시를 건설하고, 큰 것을 건축하고, 기기를 발명하고, 음악적 재능으로 무언가를 작곡해 나타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복자처럼 나와, 내가 사람을 많이 죽였다며 그것으로 자랑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속에서 자기가 신이니, 무언가를 드러내 자기 존재 가치를 계속 드러내는 형태로 세상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신 인간은 어떤 인간입니까. 그것이 창세기 12장부터 드러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드러나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가 대단하다고 나타나기보다 자기 약점만 계속 드러나는 인간입니다. 그러면 다른 점이 무엇이냐면, 계속 예수 이름 그리스도 이름을 불러 이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니, 자꾸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그 능력으로 일이 점점 해결되고, 자기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자꾸 나타나 세상을 정복합니다. 이렇게 두 부류의 인간으로 나뉩니다. 저는 이번 주에 창세기 3장 15절을 그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창세기 3장 15절을 기반으로 오늘 본문을 간단히 설명함.
창세기 3장 15절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이고, 가장 핵심적이며 가장 근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구절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이 구약 성경의 약속이고, 결국 마태와 마가와 누가와 요한복음에 그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예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고백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여러분과 저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셔서, 우리가 그 이름을 힘입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다음, 자신의 이름으로 보내신 분이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이 사도행전 2장부터 28장까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3장에 대표적인 사람으로 사울이 등장합니다. 그가 1차와 2차와 3차 전도여행을 사도행전 13장부터 28장까지 이어 가는데, 그 바울에게 제자가 한 명 있습니다. 에바브라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어디 출신이냐면 골로새 출신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씀을 듣고 자기 지역에 가 전도하여 세운 교회가 골로새 교회입니다. 그러니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대략 주후 50년에서 52년경에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쭉 이어져 십 년쯤 흘러 주후 60년에서 62년경이 되었는데, 바울에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골로새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천사를 숭배하고, 예수는 그리스도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도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는 다 안 된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 세상의 철학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며 몇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있는 가운데 쓴 편지가 골로새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골로새서 3장 12절부터 24절입니다. 골로새서 1장의 내용은, 너희가 예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되었으면 세상을 똑같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부가 어떻게 존경하고 순종해야 하는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종들은 어떻게 주인을 섬겨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 3장의 내용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3장 12절부터 24절은 종들에 대해 하는 말입니다. 골로새 지역에는 종들이 많았습니다. 자유자도 많고 로마인도 많고 헬라인도 많아 여러 사람이 섞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종들에게 말합니다. 야 너희는 눈가림만 하지 말고, 진짜 절대자이신 주께 하듯이, 바깥에 나가 너희 주인을 그렇게 섬겨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오늘 본문에서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싶은 부분.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도 편지를 썼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는 이미 세워진 지 십 년쯤 흘렀으니,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처럼, 인간은 자기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 문제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 죄의 권세와 사단에게 매여 죄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을 떠나 영원한 죽음과 심판에 있고 그것이 자손에게 이어진다는 것, 거기서 벗어날 이름은 예수이신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 머리를 깨고, 세계 복음화를 하고, 계속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도 이 기본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성령 충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일주부터 스무째 주까지 지나오며 늘 성령을 말하는데, 골로새 교회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령은 오늘날 기도원에서 말하는 방언하는 정도의 성령이 아니고, 떠돌아다니는 무속적인 성령도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보내신 분입니다. 그분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고, 이 안에 들어와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모든 상황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만 증거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고, 세상을 정복하게 하십니다. 골로새 교회도 이것을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그다음 오늘 본문에서 제가 중점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종들에게 눈가림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골로새 교회 종들의 습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 종은 주인의 소유요 재산이라, 평생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종들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보면 하는 티를 내고 주인이 안 보면 안 하며 생색을 냅니다. 보이는 눈치에 너무 민감한 것입니다. 주인이 압력을 가하느냐에 따라 열심히 하고 안 하고가 자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딱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다 평등하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똑같이 그 습성이 나옵니다. 누가 보면 하는 것 같고 안 보면 안 하는 것 같고, 자기 자리가 드러나면 하는 것 같고 아니면 안 하는 것 같은, 그 습성이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종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 눈치 보며 하지 마라, 세상에서도 그렇게 하지 마라.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주께 하듯이 하라. 여기서 주는 절대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세상에 있는 주인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을 움직이시고 만드시고 이끄시고 보존하시는 그 절대자이신 주 하나님께 하듯이, 여기에서도 바깥에서도 그렇게 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종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오늘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우선 함께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항상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나는 창세기 3장 1절부터 5절의 근본 문제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벗어났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이 안에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의 이름과 세력을 예수는 그리스도로 깨뜨릴 권세를 가지고 있고, 세계 복음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갱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하는 말처럼, 우리도 똑같이 지금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는 성과 위주이고, 일 위주이고, 능력 위주입니다. 태어나서부터 그렇게 살아와 지금 교회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되면 잘하려 하고, 열심히 하려 합니다. 특히 저를 포함해 대한민국 사람은 더합니다.
제가 자주 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안에교회와 관계된 분 중에 외국으로 결혼해 간 분이 있습니다. 그 나라는 아침 아홉 시부터 다섯 시까지 일하고, 땡 하면 끝입니다. 일 안 합니다. 자유 시간이 참 많아 놀러 다닙니다. 제가 볼 때는 이해가 안 갑니다. 그 정도 하고 되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저를 보며 이해가 안 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퇴근 시간도 없이 밤 열한 시 열두 시까지 일하니까요. 가만히 보니 저는 진짜 일 중독에 걸린 사람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 친구가 보면 미친 사람 같을 것입니다. 일에 완전히 미친 것이 아니라, 그냥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중독에 걸려 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일 중독, 그리고 성과 중독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중독이라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 동년배는 다 그 중독에 걸려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그렇게 흘러왔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는 더했습니다. 그분들은 전쟁 이후에 대한민국을 다 세우신 분들이니, 쉬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무언가를 함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많은 성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충동적으로 중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을 때도, 아 나는 열심히 뭔가 해야 돼, 성과도 많이 내야 돼, 교회당도 크게 해야 돼, 성도도 많아야 돼, 학문적으로 박사까지 받아야 돼, 이것저것 다 잘해야 돼 하는 것이 그냥 짓눌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조금 잘하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조금 못하면 하나님이 나를 계속 찡그리고 무시하고 책망하신다는 모습이 무시로 잡혀 있습니다. 그러니 쉬지를 못합니다.
어쩌면 제가 육십 몇 년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키워드가 열등감과 죄책감입니다. 열등감은 중고등학교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은근히 있었고, 목회하고 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있었습니다. 목사들과 경쟁하는 것이 눈에 드러나니, 속에서는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것을 이기려 발버둥 치다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것이 다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바깥의 똑같은 기준으로 모시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러시는 것 같습니다. 너 잘해야 돼, 교회당은 이 정도 규모 해야 되고, 하루에 몇 시간은 일해야 되고. 그 기준으로 제가 저를 계속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그 기준으로 보고 그 기준으로 모시니, 제 속에 쉼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자하고 자상하게 포근히 감싸 주신다, 그것이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 모습인데, 이 상태에서 또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강약의 차이만 있을 뿐, 여러분도 똑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목사라고 하면 장로라고 하면 집사라고 하면, 교회 직분 가운데 무언가 잘 보여야 하고, 잘 안 보면 대충 하고, 바깥에 나가서는 또 생존 경쟁의 사회에 있으니,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계속 무언가를 보이려 합니다. 집에 들어와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도,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 그 기준으로 대하지 않습니까.
저도 고백해 보면, 자녀가 셋 있었는데 다 운동을 시켰습니다. 그러니 늘 생존 경쟁의 상황이고, 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 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높다 낮다 잘한다 못한다를 계속 파악하고, 감독들이 매일 보고 있는 그 리얼한 현장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부모도 스트레스, 자녀도 스트레스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적용해 보니 벗어날 길이 자꾸 생겼습니다.
첫 단어를 해 봅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골로새서 1장에, 너희가 예수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성과로 인해 하나님이 너를 자녀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성과로 하나님이 칭찬하고 꾸중하시는 그 기준이 아니라, 자녀는 무엇을 하고 안 하고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타고난 권리를 가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과 자유하고 교통하십시오. 하나님은 성과를 보시는 분이 아니고, 성과로 너를 핍박하시는 분도 아니니, 거기에 속지 마십시오. 그 대신 예수는 그리스도를 자꾸 부르면 자유로움이 느껴지면서 종의 습성이 벗겨집니다.
그러니 오늘도 똑같습니다. 제게 적용해 보니,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다 보면 속에서 자꾸 자유로움이 생기고, 자녀로서의 권리가 회복됩니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이,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9장 30절처럼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내가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자꾸 확인되면서, 내 속에서 성과로 인한 압박감이 자꾸 벗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제 자녀도 그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자녀를 볼 때 말은 안 해도 속 가장 깊은 곳에, 아 잘해야 되는데 하는 것이 항상 깔려 있었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은근한 압박이 들어갑니다. 자녀가 그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제 속에서 드러나지 않아도 늘 밑바탕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면서, 제 속에서 성과로 압박하려는 것을 제가 자꾸 깨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자녀를 대할 때, 또 목회하는 이 현장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대할 때, 자유로운 가운데 대하고 있는 모습이 자꾸자꾸 보입니다.
마지막 결론을 드리겠습니다.
다시 고백합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여러분이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위대함이 자꾸 내 속에서 역사하여, 내가 가진 성과에 대한 압박감과 일 중독의 성향과 칭찬받고 싶어 하는 성향과 눈치 보려는 성향이 자꾸 벗겨집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자녀를 대할 때도 그렇게 되지 않고, 회사에서도 누구 눈치를 봐야겠다는 압박감이 벗겨집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내 일을 더 잘하게 됩니다. 전에는 눈치가 보여 억지로 했지만, 이제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러 그것이 벗겨지면, 내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과 내가 타고난 재능들이 자꾸 더 활성화됩니다. 억지로, 강제로 한 성과가 이 정도밖에 안 나왔다면, 그리스도를 불러 자유로워지면 성과가 더 나을 뿐 아니라 창의성도 더 개발됩니다. 저는 그것을 느낍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번 한 주간도 계속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 속에 있는 성과로 인한 압박감과 그 중독을 자꾸 그 이름으로 깨십시오. 그래서 더더욱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무리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성과로 인한 압박과 실적으로 인한 압박과 성적으로 인한 압박, 그 중독에 걸려 있는 저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창세기 3장부터 내려온 문화이고 인간의 본래 모습인데, 예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밖에는 벗어날 수 없고 그 이름으로밖에 해방될 수 없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계속 예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과 권세와 깊이를 더욱 고백함으로, 성과로 인한 그 중독에서 계속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 자유로움으로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세상을 정복하는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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